
1. 대공황의 도래와 캐나다 경제 구조의 취약성
1930년대 초반 전 세계를 덮친 대공황[Great Depression]은 캐나다 사회와 경제에 씻을 수 없는 거대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수백만 명의 캐나다인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극심한 기아와 주거 불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당시 캐나다는 소위 '더티 서티스[Dirty Thirties]'로 불리던 이 시기에 그 어떤 선진국보다 혹독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캐나다 경제가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출품의 물량과 가격이 동시에 폭락한 데다가, 중서부 대평원 지역을 강타한 치명적인 가뭄인 더스트 볼[Dust Bowl]까지 겹치면서 국가 경제는 그야말로 파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대규모 실업과 저축 소실은 결국 캐나다 정부가 시장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현대적 의미의 사회 복지 제도가 탄생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2. 참혹한 경제적 지표와 국가 생산력의 몰락
1930년 당시 캐나다 전체 노동 인구[labour force]의 30%가 일자리를 잃었으며, 인구의 5분의 1이 정부의 구호 물자에 의존하여 겨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국민총지출[Gross National Expenditure]은 1929년 수준 대비 무려 42%나 급감했습니다.
특히 대평원 농촌 지역에서는 주민의 3분의 2가 구호 대상자가 될 정도로 상황이 처참했습니다.
대기업과 개인 모두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여력도 의욕도 상실하면서 자본 투자[investment]는 완전히 얼어붙었습니다.
1932년 캐나다의 공업 생산[industrial production]은 1929년 수준의 58%에 불과했는데, 이는 미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저조한 수치였습니다.
총국민소득 역시 1929년의 55% 수준으로 떨어져 경제적 타격의 깊이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주었습니다.
3. 산업 구조의 한계와 지역별 피해의 명암
당시 캐나다 경제는 농업, 어업, 광업, 임업 등 1차 산업[primary industry] 중심에서 제조업[manufacturing]으로 막 체질을 개선하려던 과도기에 있었습니다.
원자재 수출이 완전히 끊어지다시피 하면서 모든 산업 부문에서 고용, 가격, 이윤이 수직 낙하했습니다.
주요 교역국이었던 영국과 미국 역시 대공황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캐나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단, 광산 탐사 붐 덕분에 항공을 통한 오지 수송인 부시 플라잉[bush flying] 분야 등 일부 예외적인 영역만이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1931년에서 1932년 사이 정부가 항공 우편 계약을 전면 취소하면서 대부분의 관련 기업들이 막대한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4. 대평원 지역의 비극과 인구 대이동
캐나다 서부의 프레리 주[Prairie Provinces]들은 대공황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밀 가격의 폭락은 수많은 농부들을 고향에서 내몰아 캘거리, 리지이나, 브랜던 같은 대도시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미국의 대평원 주민들이 캘리포니아로 대거 이주했던 이른바 오키 이주[Okie migration] 현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캐나다판 인구 대이동이었습니다.
프레리 주의 인구는 자연스러운 인구 대체 수준 이하로 급감했습니다.
파리저 삼각지대[Palliser's Triangle]처럼 가뭄으로 황폐화된 남부 대평원 지역을 떠나 북부의 아스펜 삼림 지대로 이주하는 피난민 행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5. 노동계의 격렬한 저항과 정부의 강경 대응
경제적 파탄 속에서 공산당[Communist Party]의 주도로 노동자 계급의 투쟁성이 급격히 고조되었습니다.
노동조합들은 대공황의 거센 파고 속에서 한 발 물러서기도 했지만, 실업자들을 포함한 노동 계급 대중은 집단 행동[collective action]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공산당이 주도한 수많은 파업과 시위는 경찰과의 폭력적인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1931년 서스캐처원주 에스테반에서 네 명의 광부가 사망한 에스테반 폭동[Estevan Riot], 1935년 밴쿠버의 발란타인 부두 전투[Battle of Ballantyne Pier], 그리고 리지이나 폭동[Regina Riot]으로 이어진 오타와 진군 운동[On-to-Ottawa Trek] 등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R. B. 베네트 총리는 공산주의를 철저히 으스러뜨리겠다고 공언하며 강경한 반공 정책을 펼쳤습니다.
6.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 여성들의 삶
대공황 시기 여성들의 주된 역할은 가정주부[housewife]였습니다.
안정적인 가계 수입이 끊긴 상황에서 식료품 조달, 의류 관리, 자녀 돌봄 등 가사 노동은 훨씬 더 혹독한 고행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출생률[birthrates]은 가파르게 하락했습니다.
캐나다 가톨릭 여성들의 절반가량이 교회의 가르침을 거역하고 피임[contraception]을 통해 출산을 연기할 정도였습니다.
소수의 여성 노동자들은 화이트칼라[white-collar] 직종이나 경공업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해고를 면했지만, 한 가정에 하나의 유급 일자리만 허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때문에 남편이 고용되어 있다는 이유로 직장을 잃는 부당함을 겪기도 했습니다.
주부들은 저렴한 식재료를 찾고, 낡은 옷을 기워 입으며, 확장 가족 간의 상호 부조[mutual aid]를 통해 가정을 지켜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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